오늘을 위한 요한계시록(1) “하나님의 선교”

요한계시록 선교적으로 읽기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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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을 선교적으로 읽어보자.
성경을 읽을 때 구속사적으로 읽어야 한다. 성경을 구속사건으로 이해해서 읽는 것인데 창조, 죄로 인한 타락, 십자가 구속, 부활을 통한 승리, 약속대로 예수님의 다시 오심, 이것이 구속사적인 렌즈이다. 물론 구속사적인 렌즈를 가지고 성경읽기도 필요하지만 그 것 보다 좀 더 넓은 차원인 선교적인 렌즈를 가지고 성경을 읽어야 한다.
한국교회는 지금까지는 구속사적으로 성경을 읽기를 해왔다. 그러나 그 다음은 무엇인가? 그 다음에 대한 고려를 해야지 내가 이 땅에서 존재해야 하는지, 삶의 방향과 이유, 존재의 가치를 새롭게 하자는 것에 의의가 있다. 선교적으로 성경을 읽는 다는 것은 그저 선교를 가자는 단선적인 의미가 아니다.
누가 나한테 엄청난 책무를 맡겼다고 생각해보라. 이것이 엄청나고, 대단하다. 그러한 책무를 맡게 되면 그 책무를 맡긴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아야하고, 왜 맡겼는지를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책무를 맡긴 동기는 무엇인가? 이러한 관점에서 성경을 읽는 다면 먼저 삼위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소아시아 7교회를 순회했을때 공통적인 하나님의 접근이 있었는데 그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이다. 성부,성자, 성령하나님이 경영에 빠지신 적이 없다.
삼위일체 하나님이라고 했을때 세분이 본질이 하나인데 위격이 셋이다. 우리는 지금 저녁예배때 요한1서의 말씀을 나누고 있는데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존재에 대해 배우고 있다. 즉, 삼위일체 하나님은 서로를 깊이 사랑하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속성이다. 그래서 삼위 하나님은 서로 함께 하길 원하신다.
그래서 “하나님의 선교”란 하나님의 임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래서 선교라고 할때 교회의 선교가 아니다.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라고 한다. 하나님의 임무는 하나님의 사랑을 타락한 피조 세계로 흘려보내고 확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일을 마치기 위하여서 하나님은 관념, 생각으로 머물지 않으시고 아들을 이 땅에 보내주셨다. 그래서 “선교”라는 것은 교회의 행사, 프로그램이 아니다. 하나님의 임무에 동참하는 것이다.
교회라는 공동체는 예수님으로 한 몸으로 묶여졌기에 하나님의 속성을 닮는게 마땅하다. 그래서 교회는 끊임없이 보내어지는 공동체가 되어야한다. 우리가 예배 후에 삶으로 나아가는 것이 “파송”이고, “Missio”이다.
삼위 하나님은 너무 서로 함께 하기를 기뻐하시기 때문에 아들만 이 땅에 보내신 것이 아니라 성령님을 같이 보내셨다. 그래서 구원의 역사, 하나님의 선교 역사에 성부 하나님이 그냥 빠져 계신적이 없었다. 그래서 예수님의 별명은 “임마누엘”이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는 뭐든지 함께해야 한다.
피로 값주고 산, 교회 공동체와 그 역사를 같이 하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미션을 주셨다는 것은 이것은 특권이다.
요한계시록 1:4–5 NKRV
4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와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과 5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예수님의 자기 계시의 방법 1.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
예수님은 미래에만, 과거에만, 현재에만 국한되어 있는 분이 아니시다. 예수님은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분이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다.” 이것은 심장과도 같은 고백이다. 여기서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들기에 창조론과 구원론도 시작한다. 여기서 우리는 계시록의 관점에서 새롭게 들어야 한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다시 오실 분의 관점에서 읽어야 한다. 성도들에게 종말론적 관점에서 예수님의 재림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가 그 분이 다시 오실 그날 까지 허리의 긴장을 느추지 않고, 오늘을 살아내야 할 가장 중요한 이유는 예수님께서 모든 권세를 한 손데 쥐고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인생의 모든 초첨이 거기에 맞춰있다. 풀리지 않은 우리의 한숨을 풀어 주실 것이다.
요한계시록 1:8 NKRV
8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2. 알파와 오메가
이 계시가 알파와 오메가가 무슨 말일까? 알파는 헬라어의 첫글자, 오메가는 마지막 글자이다. 하나님은 왜 자기계시를 이렇게 하셨을가? 모든 역사의 시작과 끝은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이다. “전능한 자” 그분이 시작하신 역사는 인간의 배반과 불복으로 인해서 어그러지는 것 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인데, 인간은 포부는 모든 것을 다 이룰 것 같이 하지만 인간은 하지 못해 망가지기도 하고, 포기하기도 한다.
과정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비틀림을 하나님은 회복하고, 고치시고, 마무리하신다는 의미이다. 선교라는 측면에서 하나님의 긴 임무였다.
3. 계 7:10
요한계시록 7:10 NKRV
10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3. 보좌에 앉으신 분
보좌에서 세상의 통치가 있었고, 모든 영광이 로마 황제에게 주어졌다. 그 시대를 반영해서 성경 기자는 의도적으로 하고 있다. 온 세상은 각각 자기 방식으로 저마다 백성들을 속이고, 세상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4. 어린 양
구원자로서 예수님이 아니면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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